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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리뷰/경제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요약 - 피터 자이한 - 진행중

by 30대TQQQ 2022. 9. 17.

 

 

과거부터 현재까지 항상 국제사회에서 강한 힘을 가진 초강대국이 존재했고, 이들 패권국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전쟁이 적고 평화가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팍스 로마(중세 로마), 팍스 브리태니카(18세기 영국), 팍스 아메리카나(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로 불리었다.

 

하지만 영원토록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한 나라는 없었으며, 글로벌 체계가 성립된 1500년 이후 패권국의 지위를 누렸던 나라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미국 등이 있으며, 패권국의 지위에 도전했다 실패한 나라는 독일, 프랑스, 소련, 일본 등이 있다.

 

2010년대 중반, 많은 한국 사람들이 곧 중국이 세계 패권국(G1)이 될 것이라고 믿었고,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 중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미중 등거리 외교'를 외치는 일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는 매우 동떨어진 발상이다.

균형자론(등거리 외교)은 일반적으로 강대국의 외교에 사용되는 이론으로, 약소국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자 노릇을 하다가는 뺨때기를 얻어맞는다.

 

균형자가 아니라면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야 할텐데, 문제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중 누가 궁극적인 승자가 될 것인지 연구하고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미국과 같은 전략 문화를 가진 나라가 중국에게 패권국의 지위를 전쟁에 지지도 않은 채 평화적으로 물려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미국만이 적당한 규모의 인구, 영토, 군사력, 자원을 보유한 국가임은 물론, 지정학적으로 최상의 조건을 갖춘 나라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동적으로(운명적으로) 초초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미국의 제일 척박한 땅이 로키 산맥인데, 멕시코 땅의 전부가 록키 산맥 정도의 수준이다.

 

또한, 국가의 국력 예측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인구통계학적 분석인데, 미국은 세계에서 인구통계학적 문제가 가장 적은 나라다. 미국에 도전하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이 문제에 직면해 있다.(중국이 패권국이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셰일 혁명을 통해 미국은 최대 500년 정도 쓸 석유를 확보하고 있어 에너지 문제에서 완전 자급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이 채굴 가능한 에너지의 양은 다른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국제 문제에 대한 신경과 관심을 점점 줄이고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미국은 국제정치에 개입할 필요가 없고, 미국이라는 보안관이 없는 세계는 무질서의 세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

 

지정학은 지리적 위치가 미치는 영향을 아우르는 학문으로 옷, 음식, 수명, 자녀 수, 직업의 안정성, 문화를 포함해 강, 산맥, 해양, 평원 등의 자연환경은 인간이 처한 여건과 국가의 성공 여부와 관련된 모든 것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과거 패권국이 공통적으로 온대지방에 있고, 강을 근거지로 삼은 이유도 지정학이다.

 

01 우리가 안다고 착각하는 세상

 

1944년 7월 1일, 44개 동맥국은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튼우즈의 한 호텔에 모였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국제체제는 제국주의 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한 별도의 무역 체제(식민지로부터 원자재를 공급받아 최종 상품을 되파는 형태)였다. 각자의 폐쇄적 체제 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상품이 한정돼 있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전쟁이 끝난 후 세계의 새로운 체제을 발표했다.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고자 하는 나라는 누구든 허락했으며, 미국 시장을 적극 개방하겠다고 했다. 관세를 부과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정반대의 체제인 관세 인하 정책을 제시했다.

 

자국 해군력을 동원해 동맹국과 적대국을 구분짓지 않고 모든 해상무역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소비 시장인 미국에 대해 무제한의 접근 기회를 허락했고, 그 반대는 강요하지 않았다.

 

- 미국과의 거래

 

브레튼우즈 협정은 일본과 한국에서 경제성장의 기적을 일으키고, 유럽연합을 구축하고, 중국을 세계 무대에 등장시키고, 미국의 무역적자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전히 브레튼우즈 당시 미국은 세계 GDP의 25%를 생산하였고, 세계국방비의 50%을 차지했는데, 2022년에도 비슷하다. 거의 70년의 기간동안 유지했다는 말이다. 실로 대단하다.

 

어떤 나라가 주요 강대국으로 성장할 기본적인 지리적 요소 세 가지를 보자.

첫째, 운송의 균형이다.

자국 영토 내에서 손쉽게 인간과 물자를 실어 나를 수 있어야 한다. 이집트는 나일 강이 있고, 프랑스에는 센 강과 루아르 강이 있다. 로마에는 도로가 있다. 여기서 균형이란 국내에서는 운송이 손쉽지만 국경 너머로는 운송이 만만치 않은 여건을 말한다. 이 여건을 통해 국내 교역망을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국경을 방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원양 향해로 알려진 복합적인 기술의 혜택을 누릴 능력이 있는지 여부다. 원양 향해 기술을 이용해 지역 경제를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하고 부를 축적할 기회를 가진다. 

셋째, 산업화이다. 기계를 이용해 노동생산성 향샹으로 경제적 산출량이 몇 배로 증가했다. 

미국은 이 세가지 요인 모두에서 최적의 지리적 이점을 누리고 있다.

 

02 이집트: 이리저리 이동하는 기술

 

- 한계를 지닌 지리적 여건

 

화물선은 컨테이너-마일당 순 비용 17센트이고, 세미-트레일러 트럭의 경우 2달러 40센트이다 단순 결과론적 비교만으로도 약 14배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다차선 고속도로에 접근할 수 있고,(지구상의 지역 95%에서 불가능한 조건이다) 비용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세미-트레일러 트럭으로 운송했을 때 이야기다.

또한, 고속도로 유지비용과 자동차보험, 주유소 건설, 자동차 정비 서비스 등  부대비용을 합치면 평원지역의 경우 40배, 인구가 없는 고지대의 경우 70배까지 차이가 난다. 왜냐하면 수로 유지비는 훨씬 저렴하고, 해상운항은 유지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값싸고 손쉬운 운송 수단의 장점은 돈을 많이 벌고, 수익성이 높은 시장을 찾아 더 먼 지역까지 상품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한계가 확장됨으로써 이로 인해 수요가 늘어난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물건을 수레에 실어 운반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음식을 구하기 위해 몇 마일 이상은 이동하지 않았다. 1600년대 초만 해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도시들(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로마, 도쿄, 상하이 등)의 크기는 8제곱 마일을 넘지 않았다.(사람이 짐을 지고 운반하는 데 두 시간 걸리는 거리) 

 

이보다 넓은 지역으로 운반하면, 본인이 먹을 식량을 생산할 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여분의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여 도시의 규모가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배불리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 동시에 약탈당하지 않도록 방어 체계도 구축하는 데 적정한 균형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매우 살기 고달팠던 시기였다.

 

-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지리적 위치

 

대략 8000년 전 일부 부족들은 나일 강 범럼원(floodplain)으로 이주하였고, 수렵채집 생활을 보완하는 방편으로 농사도 지었다. 다만, 사바나의 많은 자원 덕분에 농사는 보조적 역할만 하였고, 수세기에 걸쳐 홍수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볼모지를 객토하고, 건기에 쓸 물을 저장하느라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나일 강의 장점은 첫째, 비옥한 토양과 안정적인 물 공급이다. 계절적인 홍수로 씻겨 내려오는 토양의 자양분은 우수했고, 일정한 주기를 두고 물을 충분히 공급해주었다. 둘째, 안보이다. 적대 세력이 드넓은 사막을 통과하여 처들오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당시 기술로서는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비옥한 토양, 물의 확보, 안전한 생활 여건은 식량의 잉여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상비군이나 관개 시설 확장, 장벽 건설 등 잉여 노동력이 문명이 발달하는 데 필요한 활동에 동원되었다.

 

그 이후, 일련 부족들은 동맹을 강화하고 이것이 도시국가로 통합되면서 나일 강 유역에는 더 많은 잉여 노동력이 발생된다. 이에 금속 제련 및 주조법을 터특하여 노동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 결과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국가들이 여러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기원전 3150년 나일 강 유역한 단일한 정부의 지배 하에 들어가고 파라오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메소포타미아 하류와 인더스 강 하류 지역도 나일 강 유역과 비슷한 지리적 특성을 띠고 있고, 그와 유사한 문명이 태통했다. 그러나 문자나 도로 건설과 같은 기술 수준과 규모 및 정치 조직화 면에서 나일 강이 유일하다. 또한, 다른 고대 문명들보다 2000년 더 오래 유지되었다.

 

- 이집트: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가장 힘들다

 

이집트 주변의 완충 지대는 다른 문명 지역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지역은 모든 방향에서 적들의 접근을 차단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집트처럼 여러 세력이 통합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집트의 경우, 서쪽으로는 건조하고 뜨거운 허허벌판이 600마일 이어져, 이를 가로질러 약탈을 하기에는 무리다. 동쪽으로부터의 육로는 인간이 살기에 척박하고, 삼각주와 요르단 강기슳 사이에 놓인 300마일에 달하는 지역은 오늘날까지도 난공불락의 장애물이다. 남쪽에는 사막이 존재하지만, 사막보다는 나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강기슭이 좁아지고 급류를 종종 만나기 때문에 쉽지 않다.경로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방어책을 구축하기가 매우 용이하다.

 

단, 이집트 내부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강 주변은 땅은 모두 경작지로서 그 어떤 지역보다도 잉여 식량이 꾸준이 생산되고, 가장 인구 밀도도 높다. 내부에선 이동도 용이하다. 대부분 평지이고, 건기에는 유속이 아주 느린 호수로 변하여, 수위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북남풍을 이용하여 강 상류로 가기도 수월하다. 물자의 이동이 용이한 환경이다.

 

이러한 특정 지역 내부에서의 운송과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운송이 난이도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집트는 고립된 상태에서 화려한 생활을 구가했다. 이집트 역사상 첫 1500년 동안 외부세력은 이집트 핵심부에 침투하기가 불가능했다.

 

세상과 단절되어 안락한 삶을 누리면서 이집트는 번성하였다. 다만, 사막을 건너 바깥 세상으로 진출하기는 어려웠고, 나일 강 외부로는 세력을 확장하지 못 했다. 이런 단순한 이분법적인 특성(내부적으로 운송이 손쉽지만 외부와의 연결은 어려운 특성) 덕택에 이집트는 최초로 국가 정체를 형성했고 중세시대까지도 세계 최고의 국가로 손꼽혔지만, 동시에 지역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

 

-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이집트는 외부로의 세력 확장 대신, 잉여 노동력을 건축에 몰빵했다.(피라리드) 거대한 암석은 높이 쌓을 수 있었지만, 기술혁신은 멈춰버렸다. 반면, 다른 지역에 있는 문화권들은 기근에 맞서는 투쟁, 자연에 맞서는 투쟁, 서로와의 투쟁으로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했다. 문해, 청동, 전차, 칼 등 이집트에서는 없는 여러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했다. 

 

그 중 길들인 낙타와 돛단배를 이용하여 외부 세력들은 완충 지대인 사막을 뚫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집트 문명이 실제로는 역동성이 없고 뒤떨어진 문명이라는 사실이 퍼졌다. 이집트의 구조는 대부분의 노예의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쟁에서 싸울 군인도 없었다.

 

이후, 이집트는 누구든 쉽게 정복 가능한 만만한 곡창 지대로 전락했으며, 잉여 식량은 정복 세력이 가져가는 식민지가 되었다. 기원전 1세기부터 이집트는 유럽 식민지 시대가 붕괴될 때까지 단 하루도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람과 물자의 운송이 이집트 국경 내에서는 용이했지만 국경을 벗어나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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